Phirr
55%
태양은 가득히
[4.0] 슬픔의 삼각형
2023.05.23

슬픔의 삼각형
Triangle of Sadness

슬픔의 삼각형은 미간에 주름 잡히는 그 부위.
동시에 위계질서의 피라미드 형태.

말을 못 할 정도로 시뻘겋고 좋은 영화였습니다.
"나는 코뮤니스트가 아니야,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마르크스가 인간의 어떤 면도 내겐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던가요. 파격적인 상황과 설정이지만 그 모든 장면이 너무나도 익숙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자본주의 속세의 규칙은 자본주의 속세의 규칙일 뿐이다.<를 주장하는 작품이니만큼, 모든 게 붕괴된 섬에서의 규칙은 섬에서의 규칙일 뿐이다... 특히 엔딩에서 야야가 툭 던지는 한 마디가 정말 강럴하고 마음에 들어요
"내 비서 시켜 줄게요." 이거요.

자본주의 속세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슬로건을 전면으로 내세우는데 이 말이 가끔 동물농장의 그 문장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잖아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이 문장과 더불어 3시간 내내 쉴새없이 계급...'더 평등한 계층'의 전복을 보여주는데... 아무튼 이 전복이 계속 일어나는 과정이 정말 웃깁니다... 꼭 보세요 빨갱이라면 꼭 봐
빨갱이를 위한 헌정영화야.

한번 더 보고 각잡고 리뷰 써보고 싶을 만큼 좋은 영화였습니다. 문제는... 예술영화라 개봉 일주일 지난 지금 아무데도 관이 없다는 거죠.

모든 장면이 강렬했는데요, 특히나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부분이요.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우리는 모두 중요하다" 따위의 표어를 내건 유명 패션쇼에서 VIP에게 앞자리를 주기 위해 앞자리에 앉은 다른 사람을 억지로 끄집어내 끄트머리 자리로 보낸 장면이 좋아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유명하죠?
아무리 주제가 평등, 화합... 뭐 이런 거라고 해도 VIP와 일반 관객을 칼같이 구분해서 자리를 주려고 하잖아요. 맨 끄트머리 자리로 쫓겨난 관객과, 화려한 조명과 함께 '평등' 슬로건을 대비하는 연출이 좋았어요
2막에서 가장 맘에 드는 장면은 똥물 폭발(ㅋㅋㅋㅋㅋㅋㅋ) 이랑... 러시안 캐피탈리스트와 아메리칸 코뮤니스트의 대담 중 "군수 산업으로 돈을 번 놈들은 그게 어디서 터지는지는 신경도 안 써. 그냥 팔리면 장땡이라고." 하는 부분이고.
그리고 역시 가장 좋아하는 파트는 3막인데요, 사람들은 딱히 모두가 평등해지는 걸 원하는 게 아니라, 내가 윗자리로 올라가서 남을 하대하고 부리고 싶어하는 걸 원한다... 라는 말이 떠오르더라고요. 수많은 혁명물이 결국 왕위 찬탈-왕정 존속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요.
제목이 슬픔의 삼각형이고 포스터에서도 정삼각형 모양을 계속 보여주고 있는데요, 패션업계의 용어임과 동시에 피라미드를 연상시키는 모양이니까... 삼각형이 아무리 혁명이니 전복이니 데구르 굴러 봤자 피라미드 형태고 맨 윗층과 맨 아랫층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뜻 같아서 씁쓸했네요.
작중에서 크루즈의 승무원들은 대부분 두 부류로 나뉘는데요.
1. 흰 유니폼(선장, 항해사, 서비스)
2. 파란 유니폼(청소부, 정비공)
크루스 승선 갑부-흰 유니폼-파란 유니폼으로 이어지는 사슬이 좋아요.
화이트칼라(사무직)와 블루칼라(현장직 일용직, 근로자와 노동자 갈라치기요.
고객은 모든 노동자를 다 하대하지만... 고객과 면대면으로 접촉하는 경우가 많은 흰 유니폼 승무원에게 주로 갑질을 하는 것처럼 보이고요.
흰 유니폼 승무원은 파란 유니폼 승무원에게 갑질을 하잖아요.
정말 여러모로 훌륭한 영화입니다...

ⓒ yunico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