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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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가득히
[2.5] 공포의 살인 원숭이
2023.09.19

공포의 살인 원숭이 
Monkey Shine
1988
 
 
둘기님이랑 왓챠파티


포스터로 사기 좀 그만 치세요. 심벌즈 들고 있는 원숭이도 안 나오고, 머리에 전극 같은 거 꽂힌 채 실험당하는 인간도 안 나오지 않습니까.
 
왓챠에 서식하는 똥영화라길래 똥영화 기미에 환장하는 사람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목만 봤을 때는 그저 그런 C급 쿠소물인 줄로만 알았으나. 생각보다 좋은 영화여서 당황스럽다. 물론 똥 같은 영화인 건 맞지만. 여튼간에 똥영화 치곤 빌드업을 잘 한 편이고 조악하지 않으며 공포 연출도 나쁘진 않아서 놀랐는데, 감독이 조지 로메로였다. 그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으로 유명한 조지 로메로. 그렇다. 우리는 거장 감독이 말아주는 C급 개 쿠소 똥 영화를 본 것이다. 이런 경험 어디 가서 또 하겠나?
이야기는 사고로 전신마비 환자가 된 앨런이 장애인 보조용으로 훈련된 원숭이 '엘라'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원숭이가 훈련받은 일이라 하면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 주거나, 전화를 대신 걸어 주거나, 책을 대신 넘겨 주거나 하는 일이다. 훈련에는 교감이 중요한 만큼, 앨런과 엘라는 서로 친밀해지고 앨런의 간호와 생활 보조를 맡던 마리안은 그런 원숭이를 아니꼬와한다.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안타깝다고 여긴 캐릭터는 마리안이다. 마리안을 심술궂다고 여길 수도 있고 자업자득이라고 여길 수가 있겠다. 하지만 마리안이 엘라를 아니꼽게 여기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리안은 무엇 때문에 고용되었는가? 전신마비 환자인 앨런을 보조하기 위해서이다. 사무직 이외에는 노동으로 취급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마리안은 앨런 옆에서 '노동'을 하기 위해 고용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가 한낱 원숭이에게 뺏길 수도 있게 되었으니 어떻게 곱게 보이겠는가. 엘라가 오고 나서도 여전히 원숭이가 하기엔 어려운 목욕이나 체위 변경 등은 마리안의 역할이지만, 그 외의 일은 엘라의 일이 된다. 마리안은 원숭이 간식 통이나 채워 주는 사람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 것이다. 마리안 입장에서는 모욕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사람과 달리 원숭이는 월급을 받지 않는다. 단지 간식만 있으면 만족하니까. 마리안이 엘라에게 느끼는 적대감은 마리안 스스로의 존재 가치에 대한 의심이고, 두려움이다. 공장이 자동화되며 잘리는 공장 노동자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가? 키오스크나 셀프 계산대의 등장으로 부쩍 줄어든 계산대 직원을 느끼지 않는가? 불쌍하게도 마리안에게 엘라는 그런 존재다. 마리안의 역할은 앨런의 어머니에게 주어지고, 그 다음은 멜라니에게 주어진다. 이 둘의 공통점은, '돌봄 노동에 대해 봉급을 받지 않는, 헌신적인 여성'이라는 데에 있다. 그렇다. 엘라의 등장으로 인해 마리안이 하던 노동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앨런 주위의 여성들에게 돌아간다.
 
이 영화에서, 살인 원숭이 엘라가 인간들을 살해한 방법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앨런을 수술했던 의사는 불에 타 죽었다. 원숭이들에게 약물을 주입하는 실험을 하던 제프리는 엘라에게 약물을 주입당해 죽었다. 엘라는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전화선을 끊고 전기를 차단시킨다. 이 셋에는 공통점이 있다. 인간이 다른 짐승보다 우월한 이유이며 문명의 상징이라고 여겨지는. 불과 화학과 전기 말이다.
엘라가 의사를 죽였다고 의심하는 앨런을 달래기 위해 멜라니가 이런 말을 한다.'동들은 본능적으로 불을 무서워해요.' 멜라니가 불을 피워 가까이 대자 엘라는 멀찍이 도망가지만, 사실 그거야 인간도 그렇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불 앞에서는 (방화복이 없다면) 평등하게 타고 죽는다. 하지만 불을 조절하고 다루게 된 인간은 다른 짐승을 사냥하는 데에 불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 살인 원숭이는 멜라니를 죽이려고 할 때 꺼리낌없이 불을 붙이지 않는가. 그리고 다른 원숭이들에게 화학약품을 주사해 실험하던 제프리는 엘라를 죽일 생각으로 독극물을 주사기에 넣지만, 엘라는 그 주사기를 제프리에게 주사해 죽여버리지 않는가. 불과 화학과 전기는 인간이 유구하게 짐승을 죽이던 방식이었고, 그렇게 다른 짐승들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인간이 우월하다는 증거였다.
그 때문에 엘라의 죽음은 딱히 충격적이지 않다. 앨런이 엘라의 목덜미를 이빨로 물어 흔드는 장면에서, 그 악 쓰는 장면이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올 게 왔구나 싶었다. 짐승이 인간의 방식으로 인간을 죽인다면, 인간은 짐승의 방식으로 짐승을 죽이겠구나. 결국 엘라를 죽이는 인물이 앨런인 것도 인상깊다. 물론 엘라와 가장 깊은 교감을 나눈 사람이어서겠지만, 애초에 앨런과 엘라가 교감하게 된 이유는 앨런이 전신마비 환자기 때문이다. 인간이 짐승보다 발달할 수 있는 이유로 다들 '척추를 사용한 직립보행'을 들지 않는가? 그리고 앨런은 척추를 사용할 수 없다. 그러니 손에 도구를 들고 사용할 수도 없는 것이다.
고로 이 영화는 짐승처럼 움직이고 싸우는 인간과, 인간처럼 움직이고 싸우는 짐승 중에 어느 것이 더 우월한지, 그 우월성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지. 애초에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다루는 정말 아름다운 영화임에 틀림없다.
 

ⓒ yunico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