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어 수업
Уроки фарси
Persischstunden
Урокі фарсі
Persian Lessons
2020
20세기의 셰헤라자데
전쟁 영화는 잘 챙겨보지 않는다. 특유의 분위기와 죄책감 때문에 볼 때마다 마음이 마모되는 느낌이다. 특히 WW2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서부 전선도 아직 안 봤다.
그런데 구글무비 추천작을 뒤적거리다가 언뜻 영화 소개를 보게 되었다. 수용소로 끌려가던 유대인이 우연히 페르시아어 서적을 구하게 되고 마침 페르시아어가 배우고 싶던 독일군 장교 눈에 띄어 독일군 장교에게 페르시아어 강의를 해주게 되고, 정작 페르시아어를 모르기 때문에 언어를 지어낸다던 줄거리였다. 천일야화의 셰헤라자데가 생각나는 설정인데, 천일야화도 페르시아에서 기원한 이야기가 아닌가.
나치의 인종 청소는 아리아인이 우월하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아리아인, 그러니까 인도유럽어족은 인도와 페르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퍼져 있는 언어권을 일컫는다. 히틀러가 중동에 관심이 많았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나치적인 의미를 넘어서 인도의 베다와 유럽 신화에서 유사한 이야기가 나타난다던가, 고대 페르시아어나 산스크리트어가 라틴어와 유사한 특징이 있다던가 하는 것들. 독일군 장교가 '페르시아어'에 대한 갈망이 있는 설정도 아주 연관 없진 않으리라.
페르시아어를 모르는데 어떻게 페르시아어를 가르치지? 주인공이 가짜 페르시아어 단어를 만들어내는 방법이 굉장히 좋았다.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의 이야기면서, 자신만이 살아남아버렸다는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이고, 이름도 없이 허망하게 죽은 사람들을 기억하는 이야기이면서, 언어와 교류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름도 없이 죽어나간다. 기억에도 남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통계에서 나치 독일군의 사망자 수는 3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전사자의 이름을 우리가 기억하는가?
"이름도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허망하게 죽으려던 거냐?"
"저 사람들도 모두 이름이 있어요. 당신이 알려고도 안 한 거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던가. 매일 수십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 이름을 남기는 사람은 별로 없다. 특히 전쟁이라는 특수성 있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전쟁은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부품으로 만든다. 군사 몇 만 명은 군사 몇 만 명이지 한 사람 개인이 몇 만 모인 것과는 다르다. 페르시아어를 배우는 장교도 명부를 작성하는 일을 하지만 이름 하나하나에는 별 생각이 없다. 그건 중요하지 않으니까.
전쟁이 끝나고, 나치는 기록들을 폐기한다. 나치에 의해 죽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신원을 증명할 길도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게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듯 주인공이 울먹이며 읊는, 전쟁에서 죽어간 수천 개의 이름 때문일까.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하염없이 보고만 있었다. 이 사람들도 이름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