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rr
55%
태양은 가득히
[3.5] 애스터로이드 시티
2023.12.27

 

애스터로이드 시티
Asteroid City
2023

색감이 환상적이다. 웨스 앤더슨은 전에 그 단편들 볼 때도 느꼈지만 좁고 사각형의 세트장을 활용한 연출이 정말 좋다.

전에도 웨스 앤더슨 영화를 보고 '킬링 로맨스'  이야기를 했었다.

킬링 로맨스는 과장된 연기와 음악으로 극을 이끌어나가지만 웨스 앤더슨의 작품들은 배우들이 무감정하고 무기질적인 표정과 톤으로 엄청나게 많은 대사를 읊는다. 그 때문에 배우들의 딕션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킬링 로맨스의 배우들, 특히 이선균은 독특한 목소리 때문에 과장된 연기에 잘 어울리고 딕션 자체는 솔직히 별로다.

뭐 이런 내용의 이야기였으나 이제 이 배우가 세상을 떠났단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굉장히 싱숭생숭하다.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의미를 잘 알 수가 없다. 대사는 너무 많고 이상하고 전문용어가 넘친다. 이해하지 못해도 영화는 흘러가듯이, 극 중 인물들도 서로를 이해할 수 없지만 맞물려간다. 현실도 그렇지 않은가? 영화 속 작중 인물들의 대사로 '이해(understand)'가 유독 많이 나왔던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는 영화를 만들면서 관객들에게 이해해달라고 하는 것인가? 그리고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이런 이해가 안 되는 상황에서도 '이해한다'고 공허한 말을 던지는 사람이다. 작중 인물 중 한 명이 유독 이해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사람 마음은 모른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 영화가 그렇다. 영화는 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굳이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해할 수 없다면 그냥 그렇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런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이 영화를 이해할 수 없고 다른 몇몇 영화들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현실의 몇몇 사람들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같은 사회에서 삐걱대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영화였다.

 

극중극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 좋다. 극중에서 연극 세트장 안은 웨스 앤더슨 특유의 화사한 색감으로 표현되고, 세트장 밖은 흑백으로 표현된다. 이 대비가 굉장히 좋다. 우리가 진실되고 살아있다고 느끼는 것들은 단순히 무언가를 연기하고 있는 순간인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 yunico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