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 75
PLAN 75
정말 정말 보고 싶은 영화였는데 드디어 보게 됐다.
2016년 일본 가나가와 현의 장애인 시설에서 무차별 흉기 난동이 있었다. 19명을 살해한 범인이 "사회에 도움 되지 않는 장애인은 살처분해야 한다" 고 했다나. 감독이 직접 인터뷰에서 이 영화의 모티브로 삼았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렇다. 이건 비단 노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초고령화 사회로 노인 관련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에서 75세 이상의 노인의 죽음을 권장하는 '플랜 75' 라는 정책을 내놓게 되었다는 게 이 영화의 배경이다. 파격적인 설정이지만 영화 내에서 이에 대한 반발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영화 특유의 건조한 분위기와 함께, 노인들이 제 발로 플랜75를 신청하러 가는 장면들과 이를 응대하는 공무원들의 버석한 반응만 2시간동안 꽉 차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안락사라는 제도에 꽤 긍정적이었다.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어린 시절의 내게는 꽤 매력적으로 느껴졌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마냥 달갑지는 않다. 거동이 어렵고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운 중증장애인을, 그 본인의 의사 없이 가족이 안락사 시켜달라고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접한 이후였다. 죽을 자유는 보장되지만 죽지 않을 자유는 보장되지 않게끔 낭떠러지로 밀어넣는 것. 이것이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크게 세 개의 사이드로 진행된다. 노인인 미치, 평범한 공무원 히로무, 이주노동자 마리아 . 이 셋은 서로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요약하자면 이 셋은 '플랜 75'를 앞둔 당사자 본인, 주변인, 타인의 시선을 대변하는 인물들이다.
78세의 노인 미치는 호텔에서 일하는 청소부다. 호텔에서 동료 직원이 노환으로 쓰러진 후 '호텔에서 죽은 사람이 생기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미치를 포함해 나이가 많은 직원은 모두 해고당한다. 자식이 없는 미치는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 돈을 벌려면 일이 필요하고. 그러나 나이 든 미치를 받아 줄 곳은 없다. 이력서를 내보려고, 취업 정보를 찾아보려고 인터넷 카페를 가지만 미치는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른다. 그래서 미치는 자신의 의지로 플랜75를 신청하기로 한다.
플랜 75에 대한 거부감은(그리고 내가 현실의 안락사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당사자의 의지가, 100% 사회적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증명할 수 있는가? 정말로 그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결정인가? 에 대한 질문에서 온다. 미치는 과연 정말 자의로 플랜75를 신청하게 된 것일까? 떠밀려서 남은 선택지가 하나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 벼랑 끝까지 떠밀린 상황에서 벼랑으로 뛰어드는 것이 정말 자유인가? 인트로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일본인은 국가를 위해 죽는 것을 긍지로 여긴다'고. 그것이 사실일 리 없다. 그게 영광이라고 국가 단위로 국민을 가스라이팅하며 벼랑으로 내모는 것 뿐. 그게 자유의지라는 착각까지 주면서.
공무원 히로무의 사이드로 진행되는 이야기도 굉장히 좋았다. 히로무는 노인들의 플랜75 신청을 돕는 공무원이다. 노인에게 플랜75를 설명하고 신청서를 접수하는 히로무의 모습은 죽음을 결심한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평온하다. 이 모습은 노인을 사람으로 본다기보다는 NPC정도로 대하는 것만 같다.
아마 노인을 사회 구성원인 사람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리젠되는 NPC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에 플랜75같은 정책이 정착된 것이 아닐까. 히로무의 이런 태도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서서히 변화한다. 오래 전 자취를 감췄던 자신의 삼촌이 자신 앞에서 플랜75를 신청하는 것을 보고 난 뒤부터다. 교감을 통해 플랜75 신청이라는 퀘스트를 주는 NPC정도로 느껴졌던 상대방이 '살아있는 사람' 임을 깨닫는 것이다.
각 사이드의 주인공이 '스크린 너머를 또렷하게 바라보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 장면들이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를 넘어, '이게 과연 남의 일처럼 보이는가?' 라고 묻는 것만 같아서.
과연 어떤 식으로 결말을 맞을까 기대하면서 봤고, 기대만큼 좋았던 결말이었다. 아무리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이라고 이야기한대도, 스스로 죽는 것을 권장하기까지 한대도, 막상 죽음을 마주하면 그게 아니란 걸 안다. 벼랑 아래를 내려다보면 얼어붙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