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오브 인터레스트
The Zone of Interest
2023
감독이 아카데미 수상 소감을 말할 때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폭격을 반대하는 소감을 냈던 걸로 기억에 남아 있다. 유대인 학살을 다루는 작품으로 상을 타며, 시온주의자 유대인들이 꽉 잡고 있는 미국 영화업계의 권위 있는 행사에서. 실제로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이 이후 많은 영화인의 비난으로 가득찬 성명을 받았다. 유대인 수용소에 대한 영화 '사울의 아들'의 감독이 그를 비난하는 데 앞장섰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제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를 다루는 작품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걸 두 개 뽑자면 하나는 '페르시아어 수업' 이고, 또 하나는 바로 이 작품이다.(나는 '사울의 아들'은 안 봤고, '쉰들러 리스트'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페르시아어 수업은 이야기의 진행이 마음에 들었고,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다른 게 마음에 든다. 찝찝함과 사운드.
보통 연출이라 함은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이 영화는 무언가를 시종일관 숨기고 있다. 시작할 때 암전을 포함해서, 그 직후 선물용 카약을 눈가리개와 천으로 가린 것, 예쁜 마당이 딸린 대저택과 담장, 하늘을 가릴 때까지 클 나무 같은 것들로. 혹은 파티장의 화려하고 번쩍번쩍한 장식 같은 것들로. 강아지를 키우고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화목한 가정 내에서 수백 명을 종잇장처럼 태워 죽일 계획을 짜고 있다. 담장이 가리고 있는 것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다. 열심히 가려 보지만 비명 소리처럼 섬뜩한 음향이나 매캐한 연기는 도저히 감춰지지가 않는다. 초반부와 후반부의 검은색 정지화면이, '눈에 보이는 것만을 확신하지 말라'고 외치는 것처럼. 엉망진창으로 소리지르는 듯 날카로운 음향이 경각심을 울린다. 계획대로 되어가는 일들을 바라보며 파티장을 나왔을 때 헛구역질이 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이라는 개념은 아마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악이란 뿔이 달린 별나고 괴스런 존재가 아니라 마치 사랑처럼 우리 주변에 있다는 말도. 이 영화가 그렇다. 단란한 가정에서 아들과 딸들을 아끼는 모습처럼. 그러나 한나 아렌트의 주장대로 악함과 악하지 않은 것을 구분짓는 것은 무엇인가? 날카롭게 질문하고 사유하는 것이다. 비가 내린 뒤 땅이 굳거나 뼈에 금이 간 뒤 더 단단해지듯 사유를 거듭함으로 인간은 악함과 거리를 둘 수 있다. 그러지 않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은, 상관의 말이나 선전 방송 따위에 끝없이 휘둘리는 것은 죄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렇게 암울한 이야기만을 하지는 않는다. '악의 평범성'이란 평범함 그 자체가 아니라 생각하고 사유하지 않는 이가 악하다는 것이다. 회스 가족들은 학살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는 인물이 있다. 수용소의 포로들을 위해 사과를 숨겨 파묻어주는 소녀다. 이 장면은 시종일관 산뜻하고 형형색색이던 회스 가 장면과 다르게 흑백이며,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되었다. 애초에 열화상 카메라라는 것은 어두운 환경이나 가스처럼 '우리 눈에 (잘) 안 보이는 것'을 담는 카메라다. 회스 일가가 보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비추지 않는 어두운 현실을 찍은 것이다. 그리고 온통 깜깜한 가운데, 소녀(알렉산드라 비스트로니-코우오제치크)만이 체온 때문에 밝게 빛난다. 사운드 뿐 아니라 빛과 화면을 보여주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다.
진짜 너무 훌륭했고 돌비음향으로 보고 싶다...
[4.5] 존 오브 인터레스트
2024.06.06